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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비겁하다 생각해서 화가 났고, 그 다음엔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해서 무서웠다.
하지만 단지, 더 약한 쪽일 뿐이었구나.
그리고 그의 약함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한없이 받아주었던 사람.
뒤늦은 후회는 언제나 마음을 다하지 않은 쪽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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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나니 문득 가을방학의 '사하'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슬픔의 행복을 택한 그대가 나는 자랑스럽다고. 그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도 놓지 않아'
영화는 더 솔직했고, 더 순수했고, 더 열정적이었던 잭 대신에 고민하고 주춤하고 소극적이던 에니스의 시점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혼자 골목길에 숨어들어 눈물을 흘리다가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뭘 보냐'고 소리지르고, 온 마음을 다 주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외도에는 불같이 화를 내던, 약한 사람.
나는 결국 도돌이표다. 에니스의 약함을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잭은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오히려 사과하고 위로하고 기다려준 거겠지.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 너를 고민하게 하고 주춤하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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