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잔상이 오래 남는 여행의 순간들이 있다. 가만히 책을 보고 앉아있다가도 뜬금없이 머리속을 스치는 장면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은 늘 의외로 사소한 장면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양 손에 짐을 바리바리 들고 마카롱을 입에 물고서는 혼자 걸었던 샹젤리제 거리가 그랬고, 피렌체 두오모를 오르던 그 좁고 가파른 400여개의 계단길이 그랬으며, 시드니의 밤거리를 겁도 없이 걸었던 장면이 또 그렇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연극을 보고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모두들 잠들어 깜깜한 밤거리의 고요함 속을 걸었던 그 순간. 시드니에서의 그날밤은 이미 7년전의 일이고 사진한장 찍지 않았지만 탁 트인 아스팔트를 걷는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들은 대부분 고요하게 기억되어 있어서인지 이렇게 다시금 고요해지는 새벽녘이면 특히나 그 순간들이 그리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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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여행의 잔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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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준비에 다같이 모여서 밤을 새고 있는데 유럽여행을 간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에 사진들, 앞으로의 일정들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는 저녁약속이 있다며 카톡을 마무리하는 언니를 보니 나도 딱 오후 여행을 마치고 잠시 숙소에 들어와 와이파이를 잡고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는 다시 숙소를 나서던 그 느낌이 고대로 생각나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익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장소에 홀로 누워 하루를 정리하며 느끼던 차분함이 왠지 이렇게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차분함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은 귀가길
201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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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아 상법책을 보고있다가 문득, 정말 뜬금없이 홀로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의 464개의 계단을 오르던 날이 생각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뿐이었고 두오모에서 바라본 풍경이 유난히 멋있거나 벅차올랐던것도 아닌데, 두오모 꼭대기에서의 상쾌한 공기보다도 그 좁고 가파른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던 그 순간이 갑자기 너무 그립다
묘한 기분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문득, 생각지도 않던 장면에 향수를 느끼는것 또한 여행의 맛이구나
생각해보면 이제는 5년이나 지나버린 호주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밤늦게 노래를 부르며 숙소로 돌아가던 길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다
사소함,이라는게 참 방심하고 있는 의외의 순간에 치명적인 카운터를 날리네
20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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