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12.28 한병철, 피로사회

하지만 정작 니체라면 대중의 현실이 되려고 하는 저 인간형을 가리켜 주관적 초인이 아니라 그저 노동만 하는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 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

*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이상 할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 걷기가 그저 하나의 선을 따라가는 직선적 운동이라면 장식적 동작들로 이루어진 춤은 성과의 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치이다.

* 머뭇버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 세계가 전반적으로 긍정화되는 추세 속에서 개인도 사회도 자폐적 성과기계로 변신한다. 

한트케의 피로는 자아피로, 즉 탈진한 자아의 피로가 아니다. 한트케는 오히려 “우리-피로”라고 말한다. 이때 나는 너한테 지치는 게 아니라, 한트케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너를 향해 지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내 기억으로는 늘 밖에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었고 말을 하기도 하고 침묵을 지키기도 하면서 공동의 피로를 즐겼다. … 피로의 구름이. 에테르 같은 피로가 당시 우리를 하나로 엮어 주고 있었다.”

한편 카프카는 치유적인 피로, 상처를 아물게 하는 피로를 상상한다. “신들은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으며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

타자와의 관계가 사라지면서 보상의 위기가 찾아온다. 인정으로서의 보상은 타자 또는 제3자라는 심급을 전제한다. 스스로를 보상하거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보상구조에 이상이 생기면서 성과주체는 점점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슬픔은 강렬한 리비도가 투여된 대상의 상실과 함께 일어난다. 슬퍼하는 자는 전적으로 사랑하는 타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성과주체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며 주인이자 노예가 된다. 자유와 폭력이 하나가 된다. 자기 자신의 주권자, 호모 리베르를 자처하는 성과주체는 호모 사케르임이 밝혀진다.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2-03-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
가격비교


올해의 문화충격. 작년엔 참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는데 올해 다시 책을 펴서는 이틀만에 독파. 그만큼 일년새에 더 피로해진 것 같아.

Posted by adelina:) :